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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한국 역사 속의 기업가

한국 역사 속의 기업가

                                     방기철 지음 / 도서출판 앨피

한국 역사 속의 기업가

최근 사회 이슈 중 하나가 일본제품 불매 운동 이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로서의 한국이 남아 있고, 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에는 일제의 잔재 및 역사적 심판을 아직까지 마치지 못한 사실이 있다. 일본의 배상과 사과가 있다고 하여도, 피해자 개별개별의 배상은 없다시피 였고, 사과 또한 진정어린 사과는 아니었다. 진정 일본이 일제침략에 대한, 그리고 전범으로서의 사과를 한것이라면 야수쿠니 신사 참배라던지 역사 교과서 왜곡같은 행동을 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특히 영토 문제인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며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망언은 삼가해야 할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통해서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 깊숙히 일본제품이 침투해 있던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전, 생활필수품, 패션, 의약품 등등 우리는 일본제품을 손쉽게 사용해왔고 필요로 해왔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이 한국 경제에 핵심되는 소재 수출을 제한을 걸면서 경제적 압박을 해온것은 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간 우리가 일본에 경제적으로 의존해왔던 현실에 국민들이 자각을 하고 분노하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내가 소개해 볼 책은 「한국 역사 속의 기업가」 이다. 어째서 이책을 나는 이 시점에 소개해 보려 하는것일까?

이책은 유한양행부터 삼성까지 기업 창업주 14명을 소개하고 있다. 

1876년은 우리나라 기업사의 시작점이라고 할수 있다.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부산이 개항되었고, 1880년 원산, 1883년 제물포가 개항되었다. 또한 조선의 수도인 한성도 외국 상인에게 문을 열었다. 그 이후에도 경흥, 진남포와 목포 평양, 군산, 마산,성진, 용암포, 청진. 그리고 1910년 신의주 등 주요 항구가 모두 개방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우리나라엔 근대적 기업이 등장 한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창업한 박승직의 두산과 김연수의 삼양사는 아직까지 현존하고 있다. 반면 화신의 박흥식은 일제 강점기 주목받는 기업가였지만 해방 이후 쇠퇴 하였다. 구인화, 이병철, 정주영, 최종건이 창업한 럭키(현 LG), 삼성, 현대, 선경(현 SK) 등은 현재까지도 주목받는 기업들이다. 교보의 신용호는 보험, 한진 조중훈과 금호 박인천은 운송, 한화 김종희는 화약, 포항제출 박태준은 철강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유한의 류일한과 효성의 조홍제는 지금도 존경받는 기업가들이다. 이외에도 우리 역사속에는 큰 발자취를 남긴 기업가들이 많지만, 이들 14명의 창업주는 그들이 역사에 남긴 족적만큼이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점들이 있다.

책에서 다루는 기업가들 중 류일한을 제외한 인물들은 직,간접적으로 일본과 관계를 맺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기업활동을 시작한 김연수, 박흥식, 구인회, 이병철 등은 일제가 조선 내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한 신용기구인 조선식산은행의 지원을 받았다.  

해방후에는 일본이 남기고 간 재산을 이용해 기업을 성장시켰다. 아울러 일본으로 부터 자본과 기술, 그리고 경영 등의 지원도 받았다. 유한양행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업이 정부 주도형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경유착을 통해 특혜를 받아 왔으며, 그들은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외형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경제활동상의 막대한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함에 기업가가 곧 재벌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책에서 다루는 기업가 중 가장 눈에 띄는 2인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화신의 박흥식과 유한양행의 류일한 을 선택하고자 한다. 두 인물이 너무 상반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화신 박흥식은 반민특위 1위 구속기업인이라 할정도로 친일인 인물이다. 하지만, 당시 화신백화점을 운영하며 사용한 마케팅은 지금 여러 각 분야에서도 사용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경품을 걸기도 하였고, 일정금액 이상 구매하면 사은품을 주고 경품권을 나눠 주어 선물을 증정하였다, 또한 현금 교환이 가능한 상품권을 발매하는 식의 소비자 위주의 공격적 마케팅을 개발하고 실행하였었다. 그래서 화신 백화점은 명실상부 조선의 최고 백화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방 직후에는 반민특위에 의하여 구속이 되기도 하였지만, 다시금 정경유착등으로 사업을 이어하다가 5.16군사쿠테타가 일어나면서 또다시 구속이 되고 석방이 되는 수모를 겪는다. 박흥식은 박정희 군사정권에 강남 신도시 계획을 제안하고 어느정도 추진하기도 했지만, 당시 실현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강남 개발로 서울의 또다른 중심지로 자리남은걸 보면, 사업가로서는 안목이 있던것은 인정해주어야 할것같다. 하지만, 그가 운영하던 사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면서 박흥식의 사업운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화신전기를 일본의 소니와 합자하여 화신소니를 설립 하였지만, 국제석유파동등으로 인한 자금난에 경영악화로 일본 소니는 화신으로부터 모든 자본을 회수해가버린다. 결국 부도가 나고, 박흥식은 빈털털이가 된다. 

유한양행의 류일한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아버지의 철저한 조기교육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배움의 길로 간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 졸업후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회계업으로 일을 하였는데 회사는 류일한을 동양시장 개척을 위한 총지배인으로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류일한은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숙주나물 사업을 시작한다. 당시 중국인들이 미국에 많았다고 한다. 처음엔 병에 담아 팔다가, 훗날에는 통조림으로 만들어 팔며 성공한다. 그렇게 사업도 성공하고 결혼을 했을 무렵, 사업 차 중국에 들렀다가 고국인 한국에 왔을때, 각종 전염병과 기생충, 결핵, 학질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마땅히 치료할 약이 없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미국에서의 사업을 모두 청산하고 한국으로와서 제약업으로 창업을 한다. 그렇게 유한양행이 창립이 되고 1933년 자체개발한 약품'안티프라민'을 세상에 선보인다. 그외 그는 정제 비타민 생산과 당시 소매상에 대한 도매상들의 횡포가 심해지자 특약점제도를 도입 하기도 하였다. 그는 사업을 넓혀 자동차, 화장품, 치약제조, 수산업등에도 진출했지만 실패하고, 제지회사를 세워 우리들이 잘알고 있는 "뽀삐" 화장지를 제조하였다. ('뽀삐' 화장지는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판매 하고 있다.)
 이런 류일한은 한인 소년병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으로 미국의 전략정보국이 세운 작전 중 넵코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50세의 나이에 입대도 한다. 서울로 침투하여 일본군 부대의 주둔 위치를 파악하는 임무였는데, 무기사용법과 비무장 전투법, 지도읽기, 파고, 무전, 촬영, 낙하산 침투, 선전술, 일본인 특성등을 교육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던 중 일제가 폐망하고 침투작전을 진행하지 못하였지만,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류일한은 우리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유가 국민들이 교육받지 못햇기 때문이며, 미국이 번영을 누리는 것은 국민 교육의 결과라 생각했다. 때문에 국민 교육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학교법인 유한학원(유한재단)을 세워 교육에 앞장섰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연세대와 서울대, 고려대에도 장학금을 지원하는등 장학사업에도 앞장섰다. 그는 회장 명함보다 'Educator'라고 씌여진 명함을 사용했다고 하니 그의 교육애와 애국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수가 있다.
 류일한에 대한 평가는 그의 생전이나 사후나 한결같은 편이다. 그가 사망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고, 1995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이듬해 6월에는 문화관광부가 '이달의 문화인물'로, 국가보훈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로 류일한을 선정하였다.
평생 가정보다 기업, 기업보다 교육, 교육 보다 국가를 우선순위에 두었던 기업인에게 보내는 후대인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현재까지도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기업 대부분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이미지와 함께 반사회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는 우리 기업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와 이승만에서 박정희 독재를 거치면서 성장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즉, 우리 기업에 대한 이해는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 형성 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기업뿐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역사 속의 기업가' 라는 주제로 이책을 보면, 우리 근대사를 새롭게 보는 시각이 생긴다. 앞서 이야기 한 일본과의 현재 우리의 관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도 열리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일본을 통한 특정 기업인이나 인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힘'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결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일본제품에 의존하지 않는, 우리만의 기술로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우리 모두의 힘' 으로 기업도 경제도 커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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