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ome
  2. Review (리뷰와 생활정보)/영화 TV 시리즈
  3.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을 본 후기: 복제 인간의 존재론적 고뇌에서 찾은 인간성의 초상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을 본 후기: 복제 인간의 존재론적 고뇌에서 찾은 인간성의 초상

2025년 2월 28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은 SF 장르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이 영화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 풍자극의 본질을 지닌 작품입니다. 2054년 얼음 행성 니플하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우주 탐험을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유린되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거울을 들이댑니다. 영화 속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정체성 혼란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외의 문제를 새삼 환기시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상상력과 현실 풍자의 절묘한 결합

복제 인간 시스템의 윤리적 딜레마

영화는 지구를 떠나 니플하임 개척단에 합류한 미키가 '익스펜더블'이라는 소모품 신분으로 투입되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17번째 복제체로 재탄생한 주인공은 위험한 임무 수행 중 사망할 경우 기억을 이식받은 새로운 복제체로 대체되는 시스템에 얽히게 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SF적 장치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가 기계적 부품처럼 취급받는 현실을 투영한 은유입니다. 특히 미키17이 자신의 후속 복제체 미키18과 조우하는 장면에서는 동일성과 차이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압도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됩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과정에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복제 과정에서 이전 기억을 계승받지만 완전한 동일인이 될 수 없는 주인공의 상황은, 디지털 시대에 조각난 정체성을 가진 현대인들의 존재론적 불안과 맞닿아 있습니다. 카메라 워크는 이 점을 교묘히 강조하는데, 미키가 거대한 얼음 동굴 속에서 축소된 인물로 표현되는 장면은 개인이 시스템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자본주의적 식민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니플하임 개척단의 운영 구조는 21세기 신자유주의의 확장판을 연상시킵니다.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사령관의 대사 "희생은 진보의 필수 비용이다"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자본의 논리가 인간 생명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가합니다. 특히 토착 생명체 '크리퍼'와의 갈등 구도는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를 연상시키며, 과학적 탐사라는 명분 뒤에 숨은 착취 구조를 폭로합니다.

영화 중반부 개척단 기지의 세트 디자인은 이 점을 더욱 구체화합니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분리된 관리자의 사무실과 지하에서 기계를 조작하는 노동자들의 공간이 수직적으로 배치된 모습은 현대 사회의 계급적 위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이러한 연출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 선보인 차량 간 계급 구분의 아이콘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됩니다.

연기력과 영상미의 시너지 효과

로버트 패틴슨의 1인 2역 연기

주인공 미키 역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은 복제 인간이라는 설정의 난해함을 신체적 표현으로 승화하였습니다. 미키17과 미키18의 차이를 연기할 때 그는 단순한 의상이나 분장이 아닌 신체 언어의 미세한 변화로 캐릭터를 구분하였습니다. 전자의 경우 어깨를 움츠리고 걸음을 질질 끄는 반면, 후자는 가슴을 펴고 경쾌하게 이동하는 방식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특히 두 복제체가 대립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패틴슨은 동일 배우가 연기한 두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극명하게 조율하였습니다. 왼쪽 눈썹을 0.5초 간격으로 떠는 미키17과 오른쪽 입꼬리를 경련처럼 움직이는 미키18의 차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동일성의 환상을 깨닫게 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같은 연기는 단순한 연기술을 넘어 복제 인간의 정체성 혼란을 체현한 예술적 성취로 평가됩니다.

시각적 서사의 완성도

니플하임 행성의 세트 디자인은 SF 장르의 전통을 재해석한 혁신적 접근을 보여줍니다. 크리스탈 형태의 얼음 구조물과 푸른 빛이 도는 지하 기지의 조명은 차가운 과학 문명과 인간의 온기를 대비시키는 시각적 은유로 기능합니다. CG 기술보다 실물 세트를 중시한 제작 방식은 물리적 현실감을 계승하면서도, 디지털 합성 기술과의 균형을 찾아낸 점이 특징입니다.

특히 시간 경과에 따른 색채의 변화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반영합니다. 영화 초반의 차가운 청색 톤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적색과 황색이 도드라지는 색조 변화는 미키의 정서적 각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 서사 구조와 연동된 시각적 내레이션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총평: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도전

'미키17'은 완성도 측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 영화사에서 SF 장르의 지평을 넓힌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올해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히며,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를 신체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입니다. 비록 서사 구조의 완성도나 철학적 심도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봉준호 감독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였다는 점 자체가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쉬운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영화 종료 후 극장을 나서며 '과연 나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점점 더 분열되어 가는 우리의 자아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미키17'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SF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물론,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 영화의 평점을 매기자면, 10점 만점 기준 7.5점에서 8점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와 철학적 질문이 돋보이지만, 서사의 밀도와 감정적 깊이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인상적이었고, 시각적 연출 역시 SF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극의 흐름이 다소 끊기는 부분이 있어 몰입도가 완벽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과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향한 비판을 독창적으로 풀어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기존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처럼 완벽한 균형감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새로운 시도 자체를 감상하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미키17' 리뷰: 봉준호 감독의 SF 블랙코미디, 복제인간을 통해 본 인간 존재의 본질 - Elan's Honest Review

 

'미키17' 리뷰: 봉준호 감독의 SF 블랙코미디, 복제인간을 통해 본 인간 존재의 본질 - Elan's Honest Re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신작 '미키17'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한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영화입니다.

review.elantory.com

 

SNS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카카오톡
페이스북
X(트위터)

최근글
이모티콘창 닫기
울음
안녕
감사
당황
피폐